가을사랑 (도종환)당신을 사랑할 때 내 마음은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 내 마음은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이사짐을 싸면서 대학 시절의 노트를 뒤지다 보니, 시론 시간에 교수님이 적어주신 위의 시가 발견되었다. 당시 나는 국문학도였음에도, 어찌 그리 낭만과 문학에 인색했던가. 시를 소개해주는 교수님에 대해 어떤 공감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노트에서 시를 발견하고 나니 강의실에서 누군가가 시를 낭송하고 그것을 경청하는 모습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세상의 그 무엇도 나를 두렵게 하지 않던 그 때, 내가 스스로 우물 속에 갇혀 보내던 그 '풍요와 상실의 시간' 속에서 내가 찾던 것은 '세상의 진리'였으나, 오히려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진 기분이다.
이제 곧 포항으로 내려 간다. 대학을 진학하며 부푼 꿈을 안고 올라왔던 서울이다. 욕망의 덩어리, 내 눈에는 처음부터 서울이 그렇게 비쳐졌지만, 그 욕망의 틈 속에서 나의 욕망은 어느만큼의 생존율을 지닌 것일까. 현실은 얼마나 커다란 모습으로 나의 삶의 무게중심으로 자리해가고 있나.
꿈을 이루기에는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위로하며, 해마다 가을병을 앓았던 대학 시절의 나를 오랜만에 다시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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