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에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기사를 하나 내보냈다. 이름하여,
특목고가 명문대를 많이 보내지만, 일반고교에서도 보내기도 한다. 서울과 수원의 두 학교의 경우, 그 비결은 아래와 같다.
- 100여권의 교재를 집필한 교사들의 수업능력 : 몇 명의 교사가 각각 몇 권의 어떤 교재를 집필했는지는 알 수 없고, 떨렁 숫자만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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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수준별 이동수업 : 이게 진짜 잘 효과를 거뒀으면, 모든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상위 학생 몇몇만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다는 것이 수준별 이동수업의 성공 사례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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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동기와 그에 맞는 진학지도 :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서울대 합격생 9명 배출이란다. 그러면 학생들의 뚜렷한 동기는 서울대 진학, 진학지도의 목표도 오로지 서울대 진학 뿐이었다는 거다. 과연 '다양한' 적성이나 소질을 고려한 동기유발과 진학지도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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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만 잡은 맞춤형 교재 : 핵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말대로라면, 비판적 감상이나 창의성을 이 학교의 수업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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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 깍은 머리에 엄격한 규율 :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인가? 청소년기에 민주주의를 올바로 배워야 성인이 되어서도 올바른 민주 시민이 될 수 있다.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교육은 없었다는 것을 자랑인듯 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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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등교한 후 영어듣기 수업, 정규수업 이후 3시간 보충, 11시까지 자기주도 학습 : 일단 애들을 학교에 잡아두는 이런 건 솔직히 다른 학교도 다 한다. 이게 비결인가?
-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시켜주고 학습량을 많이 확보해 주는 것 : 전자는 자기주도학습, 후자는 주입식교육. 모순된다고 생각지 않는가?
- 마지막으로, 교사의 열정 : 맙소사. 결국 교사가 열정적으로 하면 서울대를 많이 보낸다는 기사였다.
이런 방식의 교육은 서울대를 진학한 후 라인이라도 잘 타서 사회 지도층이 돼도, 사람 말귀 못 알아듣고 자기 생각만 반복해서 얘기하는, 또는 토론의 기본 원칙도 몰라서 100분토론 같은 데 나와서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는, 또는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조금이라도 없어서 50이 넘어서도 전조작기의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류의 사람밖에 길러내지 못한다. 그러면 누가 피해자인가? 학생이다. 교사는? 교사도 피해자지만, 본연의 임무를 외면한 직무유기의 대가이므로 그건 인과응보다. 그러면 학생만 억울할까? 것도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 속에서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피해는 오히려 이런 학생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있는 사회에서 사는 소시민들에게 간다. 쥐와 그 일당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금처럼 말이다.
기본적으로 기사를 쓴 기자의 마인드 자체가 제 정신이 아니다. 위의 요약처럼, 내용도 내용이지만, 전제 자체가 명문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서울대이고
(이 기사에서 연고대의 위치는 좀 애매했다. 서울대만 명문대로 쳐주려다가, 수원의 고등학교 때문에 연고대도 넣어준 것 같다.), 명문고는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다. 이것이 사실이지 않냐고 내게 반문할 수도 있다. 허나, 명문대는 기준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고, 고등학교에서의 교육에 기대하는 가치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더군다나, 위에 제시된 '비결'에서 학생들을 위한 인성적인 노력은 물론, 교육과정에서 중시여기는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위한 노력은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백번 양보해 기자의 전제를 인정한다 해도, 이 기자는 사회의 눈과 귀를 맡고 바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제시하라는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야합형 기자라고나 할까.
서울대의 교육이 명문이라 불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서울대를 보내기 위한 위와 같은 고등학교에서의 모습과 그를 미화시키려는 발상 자체는 가히 후진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